영화같은 실화, 영화 1987 줄거리 스포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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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 6. 16:02 Movie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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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감독 : 장준환

출연 : 김윤석(박처장), 하정우(공안부장), 유해진(한병용 교도관), 김태리(대학 신입생 연희 &한병용 교도관 조카),

박희순(조반장), 이희준(윤상삼 기자), 설경구(김정남), 우현(강본부장), 문성근(안기부장), 여진구(박종철), 강동원(이한열)

영화 1987 줄거리 스포있음 스포투성.

1987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1987은 영화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1987년 1월, 전두환 정권 말기 남영동에서 조사를 받던 서울대 언어학과 박종철 학생이 사망한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시신 화장을 검찰에 요청하지만 공안부장 최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지시한다.

우여곡절끝에 부검을 하게 되고 경찰은 쇼크사로 인해 죽었다는 거짓을 발표하게 된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흔적과 부검의의 소견, 박종철 군을 처음 진찰?했던 의사는 고문에 의한 사망을 가르켰고,

사건을 집요하게 취재하던 윤기자는 물고문 도중 질식했다고 신문에 보도했다.

이에 경찰에서는 조반장과 다른 형사 두명만 구속시키고 사건을 은폐 축소 하려한다.

당시 직선제로 독재정권을 갖고 있던 전두환 대통령은 여전히 간선제로 할 것이라고 발표를 한다.

한마디로 자기 손으로 대통령을 뽑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고 다음 대통령은 노태우로 생각해두고 있었다.

박종철 군의 사망은 많은 대학생들을 일으키는 힘이 되었고 데모를 이어갔다.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조반장을 통해 두 형사 외에도 개입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교도관 한병용은 이 사실을 수배중인 김정남에게 알리기 위해 조카 연희에게 부탁한다.

연희는 데모에 관심도 없었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삼촌이 못마땅했다.

운동권에 있던 같은 학교 선배 이한열은 연희를 찾아와 함께 할 것을 권한다.

연희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가족들 생각은 안해요?"

한열 "그게 잘 안되. 마음이 너무 아파서..."

김정남의 은신처를 알아내기 위해 경찰들은 한병용을 남영동으로 잡아가서 고문한다.

연희는 삼촌이 남겼던 메모를 김정남에게 전달하고 그것은 명동성당에서 김승훈 신부님에 의해 발표된다.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뒤 6월 연세대 앞에서 1천 여명의 학생이 정부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이 쏜 최류탄에 이한열이 맞아 생사를 헤매다가 사망하게 된다.

로이터 기자로 인해 이 사진은 신문에 실리게 되고 국민들은 분노했고 대학생 뿐만이 아닌 모든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항쟁을 해서 걷잡을수 없게 되었다.

이로인해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요구를 전두환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최루탄은 사람을 향해 쏘지 않고 허공을 향해 45도로 발사 되어야 하는데 이때 경찰이 계속 직격으로 최루탄을 쏘고

이한열은 그 최루탄에 맞았다.

90년대 후반에도 뉴스에서 데모를 하고 최류탄이 발사되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어서 찾아보니

최루탄은 불과 18년 전인 1999년 이후에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위의 사진이 1987년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질때의 실제 사진이다.

바로 아래 사진은 영화속 이한열 열사 = 강동원이 쓰러질때의 사진이다.

매우 흡사하다. 최대한 사실과 다르지 않게 찍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

로이터 사진기자였던 정태원씨가 찍은 사진으로 이 사진은 로이터 통신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된다.

그 아래의 사진은 영결식때 함께한 시민들이다.

영화 마지막 엔딩크래딧이 올라갈때 저렇게 1987년도의 실제 사진을 하나하나 보여주는데

영화보다 더 슬펐다. 그리고 촛불집회가 오버랩되었다.



실제로 연희만 가상의 인물이고 연희의 삼촌 한병용은 실존인물 전병용 교도관과 한재동 교도관을 합친 인물이다.

경찰이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수배자인 서울대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하던중 후배 박종철을 잡았고

박종운의 소재지를 말하지 않는 박종철을 고문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박종운은 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서 변절자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박처장의 실존인물 박처원씨는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박처원은 고문에 대해 한마디 사과하지도 않고 당뇨증상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았고 10년전 노환으로 죽었다.

전두환은 6월 민주항쟁으로 인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의 표가 갈리고,

결국 전두환이 다음 대통령으로 뽑았던 노태우가 당선이 되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거액의 비자금과 군사반란 주도 혐의로 노태우, 전두환 대통령은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고

전두환은 무기징역, 노태우는 17년의 형량이 확정되었으나 1997년 대선 이후인 12월 22일 대통령 김영삼이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관련자들을 모두 특별사면하여 석방함으로써 전두환, 노태우는 구속 2년만에 출옥하였다.

그당시 김대중이 대통령 당선된 당시였기에 김대중이 사면을 권유했다는 썰도 있지만 뭐가 진실인지 난 모르겠다.



가슴이 먹먹했던 영화. 영화같은 실화. 영화가 끝났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영화 1987.

불과 30년전 일이라는것이, 어쩌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고 믿을수 없었고 부끄러웠고 소름끼쳤다.

내가 그때 성인이었다면? 아마 연희처럼 데모에 휘말리지 않고 개입하지 않고 모른척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모른척해도 연희처럼 삶에 직간접적으로 부딪혔겠지.

내 친구가, 내 가족이, 내가 당할수 있는 일이었겠지.

그 모든것을 묵과했던, 지시했던, 암묵적으로 동조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저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개혁하려 했던, 바꾸려했던 살아남은 사람들도 과연 저들만큼 잘 살고 있을까?

1987년과 2017년.

많은 것이 변했지만 과연 정말 많은것이 달라졌을까?

데모가 촛불시위로 바뀌었고 최류탄이 물대포 혹은 방패만으로 바뀌었지만 그 속은?

수뇌부는 얼만큼 바뀌었을까?

20대였던 그들이 50대가 된 지금 그들은 또한 얼마나 바뀌었을까?

눈물이 멈추지 않아 영화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박종철 열사를 시작으로 이한열 열사로 인해 터진 시민들이 한 마음으로 모였던 광장과 거리에 30년이 지난 작년도 모였었다.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어느것에도 한번도 열정적인적이 없었던 나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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